의료윤리 관점에서 본 의료 빅데이터 활용의 쟁점
윤리법제위원회
가톨릭의대 부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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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 분야에서는 전자의무기록, 건강보험 청구자료, 유전체 정보, 웨어러블 기기 정보 등 다양한 의료데이터가 임상연구와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의무기록이나 보관 검체를 현재의 디지털 자료와 연계하면 새로운 의학적 근거를 얻을 수 있지만,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되는 만큼 연구의 효율성뿐 아니라 연구대상자의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의료 빅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할 때에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 보호법」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생명윤리법은 기관생명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의 심의와 연구대상자의 서면동의를 원칙으로 하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서면동의가 면제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건강정보와 유전정보를 민감정보로 보호하면서도, 과학적 연구 등의 목적으로 가명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은 가명처리와 데이터심의위원회(Data Review Board, DRB) 심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안내하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으므로 기관별 적용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향적 연구에서는 연구대상자에게 자료의 이용 목적과 범위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장기간의 코호트 연구나 유전체 연구에서는 향후의 모든 연구 목적을 미리 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은 민감정보 처리 시 목적을 구체적으로 특정한 동의를 요구하고, 생명윤리법에도 포괄동의에 대한 명시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예상 가능한 이용 범위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최초 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연구가 계획될 경우에는 재동의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대상자가 온라인을 통해 동의 범위를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는 역동적 동의(dynamic consent)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 법률에 명확히 규정된 방식은 아니므로 IRB와 충분히 협의해야 합니다.
이미 축적된 전자의무기록, 건강보험 청구자료 및 보관 검체를 후향적으로 이용할 때에는 연구가 인간대상연구인지 인체유래물연구인지에 따라 서면동의 면제 요건을 각각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자료를 가명처리했다고 해서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의무기록, 유전체 정보, 위치정보처럼 서로 다른 자료를 결합하면 특정 개인이 다시 식별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계획서에는 자료의 결합 방법, 접근 권한, 보관 기간 및 폐기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다른 자료와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재식별 위험을 평가해야 합니다. IRB 심의와 DRB 심의는 목적과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르므로, 의료데이터 연구에서는 생명윤리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요건을 연구설계 단계부터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의료 빅데이터의 윤리적 관리는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중요합니다.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는 2025년 발표한 성명에서 의료 인공지능을 의사의 판단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결과가 실제 진료에 반영되기 전에 의사가 이를 검토하고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을 유지해야 한다는 Physician-in-the-Loop (PITL)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편향되거나 대표성이 부족한 자료를 학습하면 특정 환자군에서 부정확하거나 불리한 결과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 학습자료를 구축할 때에는 자료의 출처와 수집과정을 기록하고, 실제 환자집단을 적절히 대표하는지, 특정 집단에 불리한 편향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세계의사회 성명은 인공지능 학습자료를 수집할 때에도 IRB 심의와 설명 및 동의를 포함한 인간대상연구의 윤리 기준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어떠한 자료 구축이 생명윤리법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지 연구의 성격에 따라 검토해야 합니다.
의료 빅데이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관련 법률과 가이드라인을 형식적으로 따르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전향적 연구에서는 충분한 설명과 동의가 필요하고, 후향적 연구에서는 가명처리와 재식별 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알고리즘의 성능뿐 아니라 학습자료의 대표성과 편향, 수집과정의 윤리적 정당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자에게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활용하려는 윤리적 태도가 요구됩니다.
본 letter는 2026년 SIDDS의 의협필수세션에서 유소영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의료윤리 관점에서 보는 Big data 사용에 대한 문제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강의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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