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응급환자 발생시 의료인의 대처
윤리법제위원회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안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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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한소화기학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소화기학회 윤리법제위원회에서는 실제 진료·임상연구 중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윤리·법적인 상황에 대해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강의 및 의견 등을 모아서 회원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준비하였습니다. 여러 회원님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원고에서는 최윤영 대한항공 항공보건의료센터 센터장이 2025년 12월 대한의학회 뉴스레터에 올린 기고문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였습니다.
기고문 원본
항공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갑작스레 발생하는 기내 응급환자와 이에 대처하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기내는 지상의 병원과 비교해 인력, 시설, 장비가 부족한 특수하고 제한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 존중과 환자를 위하겠다는 선서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기내 닥터콜에 주저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응급처치의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와 사후 법적 분쟁 가능성 여부이다. 2017년 대한가정의학회 및 한국항공우주의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기내 응급상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비중은 61.6% 수준에 그쳤다.
선의의 의료 행위를 보호하는 국내외 법적 근거
의료진의 선의의 응급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내외 법적 보호 규정은 명확히 마련되어 있다. 국내법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선한 사마리아인 법)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법 조항의 존재 이유는 선의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이다.
국제적으로도 기내 의료진의 응급처치에 대한 법적 보호는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법(Aviation Medical Assistance Act, SEC 5)에 따르면 “기내 의료 응급 상황 시 지원을 제공하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개인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해 제기된 모든 소송에서 중과실의 위법 행위가 없는 한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발적으로 기내 의료 응급상황에 도움을 제공한 의사에게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내에서 이와 같은 기내 응급처치와 관련된 의료진에 대한 소송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만약 발생하더라도, 항공사에서 법적 책임을 보장하고 대처하는 절차가 잘 갖춰져 있다.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 판단 기준과 항공사의 보호 장치
기내 응급처치에 주저하는 의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중대한 과실'이 제한된 기내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될지이다. 항공안전법 및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른 최소한의 응급처치 환경과 항공사의 적극적인 지원 시스템은 이 '중과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제도적 보호 장치이다.
대한항공은 기내 위성전화를 통해 24시간 지상 의료진으로부터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체계인 '항공응급콜'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한 지상 전문 의료진의 실시간 자문은 기내 의료 전문가의 합리적인 재량권(Reasonable professional discretion)을 뒷받침하며, 의료 행위의 객관성을 확보하여 중과실에 대한 법적 방어력을 극대화한다.

[그래프 1] 대한항공 기내 응급콜 운영 현황 (환자승객 증가와 항공응급콜 증가 동향)
이러한 응급콜 건수의 증가 추이는 지상 의료진의 조언이 기내 응급상황 대처의 중요한 '안전망'이자 의료진의 '중과실 방지 장치'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선의로 응급처치를 제공한 의료진의 책임을 면제하고, 항공사 역시 법적 책임을 보장함으로써 의료진이 안심하고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내 응급상황은 흔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제한된 기내 환경과 전문 의료인의 부재라는 특수성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내에 탑승한 의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주저하지 않는 의료진들의 용기와 대처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될 수 있다.
<출처: 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 177 (December 2025), 오피니언(2) 고도 8000피트, 당신의 청진기는 안전한가? 기내 의료 지원의 법적 책임과 선의의 보호 장치>
본 기고문은 기내 응급상황 대응을 개인 의료진의 판단에만 의존하기보다, 항공사·지상 의료진·제도적 장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선의의 응급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의료진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기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의 응급 대응이 단일 의료인의 책임이 아니라 협력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임상적·윤리적 측면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대한민국의 의료 환경을 고려할 때, 일부 내용은 다소 이상적으로 제시된 측면이 있으며, 의료진이 체감하는 현실적 부담과는 일정 부분 괴리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상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법적 보호 규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실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어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기내 응급처치와 관련된 의료진 대상 소송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이를 곧바로 법적 위험이 낮다는 근거로 일반화하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국내 의료 환경 전반에서 소송 부담이 상당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항공사의 응급의료 지원 체계(예: 지상 의료진 자문 시스템)는 기내 의료행위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자문이 법적 책임의 완전한 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임상 판단은 여전히 현장 의료진의 재량에 기반하므로, 이에 따른 책임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기고문의 메시지를 보다 실효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호와 시스템의 존재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내 상황에서 의료진이 수행해야 할 역할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무 지침에 대한 논의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병행된다면, 의료진이 과도한 부담 없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응급상황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